🍃 부천솔병원 정신건강 에세이
당연함이라는 착각
익숙함 너머에 존재하는 타인의 수고를 바라보는 일
우리는 수많은 ‘당연함’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아침에 차오르는 숨, 나를 맞아주는 일상의 온기, 타인이 건네는 소소한 배려나 정성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어떤 마음이나 관계든 반복과 익숙함을 입는 순간 무뎌집니다. 처음에는 감동과 고마움으로 다가왔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풍경처럼 덤덤해집니다. 이는 뇌가 자극에 적응하며 에너지를 아끼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1]. 문제는 이 무뎌짐이 누군가의 정성과 수고를 마치 원래 내게 주어진 권리인 양 착각하는 지점으로 흘러갈 때 발생합니다.
호의가 권리로 바뀌고 정성이 당연함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매우 은밀합니다. 받는 이는 상대가 치르는 비용—그 뒤에 숨겨진 고민과 시간, 에너지—을 직접 치르지 않기에 그 무게를 온전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타인의 수고를 모두 이해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2]. 그리하여 처음에는 고맙다며 울컥하던 마음이 “늘 해주던 것”으로 변하고, 정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왜 이번엔 안 해주는가” 하는 서운함이나 요구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정성을 쏟은 이는 진심이 당연시되었다는 허탈함을 안게 되고, 호의에 무뎌진 이는 고마움을 느끼는 감각 자체를 상실해 갑니다.
세상 어디에도 ‘원래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누군가의 배려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시간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타인의 무심한 태도를 무작정 비난하거나, 반대로 “속으로는 고마워할 것”이라며 섣불리 포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상대의 배려를 권리로 착각해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단지 표현이 무뎌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상대가 어떤 마음이든, 타인의 수고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관계의 균형은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3].
누군가 나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작은 배려 하나조차도 그 사람의 삶에서 얼마간의 시간과 마음을 쪼개어 건넨 결과물입니다. 매 순간 초기의 감동을 완벽히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지 않는 것, 누군가의 정성 뒤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삶이 담겨 있음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익숙함이라는 착각 속에서 타인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는 기본적인 선입니다[4].
📚 참고문헌 (References)
- Frederick S, Loewenstein G. Hedonic adaptation. In: Kahneman D, Diener E, Schwarz N, editors. Well-being: The foundations of hedonic psychology. Russell Sage Foundation; 1999. p. 302-29.
- Krueger J, Clement M. Ego-defensiveness vs. false consensus: The case of the all-knowing self. J Pers Soc Psychol. 1994;67(4):596-610.
- Walster E, Berscheid E, Walster GW. New directions in equity research. J Pers Soc Psychol. 1973;25(2):151-76.
- Emmons RA, McCullough ME. Counting blessings versus burdens: An experimental investigation of gratitude and subjective well-being in daily life. J Pers Soc Psychol. 2003;84(2):37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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